고요한 강

♣ 아~ 보고 싶어라 · 보고 싶어라 · 내 여인이 보고 싶어라 · 꿈결에라도 보고 싶어라! ♣


살다 보니까 요강이 다 그립습니다. 문화에

살다 보니까 요강이 다 그립습니다.


 



윈도7 쓰던 시절엔 전혀 못 느꼈는데 윈도 10을 쓰면서 바탕화면에 난 휴지통 아이콘이 너무나도 단조롭게 보였습니다.


해서 다른 아이콘으로 바꾸기로 했죠.


 


먼저는 제 컴퓨터에 저장한 기존의 아이콘 중에서 이것저것을 다 대봐도 마땅한 게 안 보입니다.


아이콘이 단독으로 있을 땐 그럴싸했지만, 그놈을 바탕화면의 휴지통과 매치하니까 영 아니더라고요.


 


그리하여 차라리 직접 만드는 편이 낫겠다 싶었습니다.


그럴 요량으로 인터넷에서 여러 가지 그림을 가져와서 편집도 하고 수정해 가면서 아이콘으로 탈바꿈시켰는데 역시나 신통치가 않더라고요.


 


처음엔 주로 밥공기를 가져와서 빈 그릇은 빈 휴지통으로 찬 그릇은 찬 휴지통으로 바꿔봤고요, 나중엔 인터넷에 떠도는 휴지통 아이콘을 모아서 적용해 봐도 역시나 달갑지 않데요.


 


그러던 중 문득 아주 어린 시절(아홉 살이 안 됐을 때)에 산중 오두막집에 살면서 썼던 요강이 생각나지 뭐예요.


 


제 삶에서 산중의 오두막집이라고 하면 1970년 이전에 살아온 이야깁니다.


 


산중 오두막집엔 방 하나에 가운데론 구렁이 넘나들던 부엌이 있었고 그 옆으론 마구간이 있었는데 이 모두가 한 지붕 아래에 있었죠.


그리고 집 주위론 적당한 높이로 돌담이 처져 그 안에는 작은 마당과 어느 철 밤으로면 하얀 꽃이 흐드러졌던 장독대도 있었답니다.


 


그 담장 밖으론 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을 겸하여 커다란 마당이 있었고 그 마당 옆으로는 작은 남새밭이 있었으며, 마당 끝으로는 측간(화장실)을 겸해 돼지우리가 있었는데 그 곁으로는 큰비만 아니라면 절대로 큰 마당까지 넘쳐나지 않을 작은 개울이 흘렀지요.


여름날 밤으로는 거기 큰 마당에 멍석을 깔고 온 가족(어머니, 아버지, 나, 동생들)이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잠을 자곤 했었는데 돌이켜보면 그 시절 모기는 그리 드세지도 않았던 거로 기억합니다.


 


멍석 주위로 가벼이 푸릇푸릇한 풀 좀 뜯어다가 모깃불 피웠던 게 다였던 거 같았는데 조용했었습니다.


요즘 모기들은 잡아도 잡아도 또 나오고 물려도 어찌 그리 드세고 가려운지 원^^^


그 시절엔 모기 때문에 잠 못 잔 적도 거의 없었을 겁니다.


 


새벽이면 추우니까 얼른 다시 방으로 들어갔을 뿐 / 또 하나는 그놈의 모기가 아니라 돌이켜보면 그것이 비둘기 울음이었는데 그놈의 비둘기 울음소리 어찌나 무서웠는지 모릅니다.


그 산중에선 사람이 아닌 족제비나 수리(매)한테 집에서 기르던 닭이나 방목해서 키우던 염소 등을 빼앗겼던 일이 드문드문 일어났던 시절인데 저는 그 모든 것을 다 떠나서 구구대는 그놈의 소리가 젤로 무섭더라고요.


-= 구국^ 구욱구~ 구국^ 구욱구~ =-


 


산중에서는 다들 아시겠지만, 낮의 햇살도 짧고 어쩌다가 휘엉청 달이 뜨는데 그 달빛 역시도 매우 짧아요.


등잔불에 기름이 아까우니까 해가 져서 자연광이 다하면 온통 칠흑 같은 어둠뿐인데 그 어둠속에서 밤새도록 저렇게 울어댄다고 생각해봐요.


 


암놈이든 수놈이든 녀석들 입장에선 시집 장가들려고 그랬겠지만, 그런 사정을 알 턱이 없는 어리디 어린 제 처지에선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그 밤중에 요강이라도 다 차서 비우고 오라고 하면 차라리 죽었으면 죽었지 방구석에서 나가고 싶지 않았던 밤길이었지요.


 


-=그 요강 / 새 하얗던 그 요강 / 스테인리스강이 아니라 온통 하얀 사기였던 그 요강 =-


 


주로 새벽이면 그 요강을 비우러 나갔었는데 화장실이 아닌 남새밭 고랑이나 호박구덩이 혹은 물 외(오이)씨를 묻어둔 구덩이에 부었답니다.


한마디로 그것의 내용물이 뭐가 됏든지 그것은 버려야 할 쓰레기가 아니고 자연으로 돌아가서 우리의 먹거리를 책임질 거름이 됐던 겁니다.


 


--- 그런 식으로 작물을 키워 먹거릴 확보하면 몸 안 구석구석 회충의 악순환 고리가 끊기지 않을 거라고도 최근 들어서는 이야기들 하지만 ---


 


어쨌든, 제게 요강은 세계에서 가장 선순환 친환경적인 생태 고리였습니다.


제 믿음이 글렀다고 욕할지라도 아직도 저는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인터넷에서 무턱대고 요강 그림을 베껴다가 휴지통 아이콘으로 써봤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양새가 영 아닙니다.


 


그래서 그 밑그림을 프로그램(Paint Shop Pro 6)을 써서 요리조리 마구 굴려서 새로이 만들었지요.


그런 다음에 역시 이전에 그랬던 거처럼 프로그램(EasyPicture2Icon)을 써서 아이콘으로 저장했는데 이 역시도 신통치는 않지만, 그나마 그동안에 만든 놈 중 제일 낫습니다.


그러므로 당분간 새로운 모델을 찾을 때까진 요놈들로 휴지통 아이콘을 대처하겠습니다.


 


- 그런데 요놈들 참으로 골 때립니다. -


휴지통을 비우거나 넣으면 그 즉시 바뀌어야 정상이 아니겠어요?


그러한데 요 못된 놈들은 꼭 자판에서 F5 단추 눌러서 정보를 새로이 고쳐야 아이콘도 바뀌지 뭡니까?


에이!^^! 못된 놈들 같으니라고^^^



 


~ 요강나라 공주님 - 01 ~



 



 


~ 요강나라 공주님 - 02 ~



 



아무리 그래도 그 시절의 그 요강이 그립습니다.


만나면 걸쭉한 막걸리로 푸짐하게 한잔 먹이고도 싶습니다.



 


 



덧글

  • 까진 산타클로스 2019/10/11 08:51 #

    나는 놋그릇 스뎅이였는데...?

    흰 사기ㅡ 에서 스크롤 내렸소이
  • 류중근 2019/10/12 11:57 #

    - 야무딱지게 들고 가서 논시밭에 실실 부서불고 와라~ 잉???-
    - 응 글고 기양 가저오지 말고 거그 꼬랑 물에 행가갖고 와! -

    초가 단칸 방 집이었는데 소마구(외양간), 정지(부엌), 큰방(엄니, 아부지, 나와 두 동생 이렇게 다섯이 한 방에 자는 방)이 있는 집이었어요.
    방문 앞으로는 토방이 그 밑으로는 폭 2m쯤의 안마당이 마당 가로는 돌담을 둘렀었고요, 돌담 너머로 바깥마당이 산으로 올라가는 길과 함께 있었죠.

    그리고 그 바깥마당(산길) 곁으로 작은 논시밭(남새밭)이 집 중앙을 중심으로 오른편에 있었고 왼편으로는 있으나 마나 하게 허술하게 덮인 측간(화장실)이 있었으며 그 곁을 아주 작은 내가 졸졸 흘렀답니다.

    그 작은 내 곳곳엔 물이 고였기도 해서 추억이 깊이 스몄어요.
    어느 한 철에는 사방팔방에 널브러졌던 싸리나무 뿌리를 캐서 올무를 만들고 그걸 신우대 끝에 묶은 뒤 다른 신우대 끝에 밤중의 개똥벌레, 소똥 벌레보다 열배 백배나 많았던 개구리를 잡아 쭉 훑어 그 속살로 미끼 삼아 묶고는 물 흐르는 계곡의 큼지막한 바위 밑에 집어넣고는 참게를 꼬셔 냈지요.

    참게 그놈 참으로 영악한 놈들이에요. 아까 만든 싸리나무 올무에 걸려들었을 때 고기 낚는 거처럼 확 챘다가는 참게 눈썹도 구경 못 해요.
    운이 좋다면 녀석이 꼭 도마뱀처럼 큼직한 대가리(발)만 떼고 휙 들어가 버리거든요.

    그러니까 올무는 형식상 필요하고 최대한 바깥으로 유인해서 손으로 덥석 잡는 것이 장땡이데요.
    우리들의 참게 낚시를 진두지휘하셨던 산중 오두막의 사촌 형님께서는 산에서 무슨 나무와 뿌리를 캐더니 그걸 돌로 마구 짓이긴 뒤 물이 조금이라도 고인 웅덩이가 보이면 마구 뿌리는 겁니다.
    그걸 초구라고 했던가 뭐라고 했던가 하여튼 그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형님께선 그렇게 해서 그 산중에서 장어도 잡고 그랬답니다.

    어쨌든 그 시절 우리 집에 최고의 신문물은 사기로 된 하얀 요강이었고요, 그다음으로 큰 것이 마당 한쪽에 듬직하게 우뚝 선 돌절구통이 있었으며 지금 생각하니 안 마당 한쪽을 온통 차지했던 장독대의 새까만 옹기들도 그 시절 최고의 신문물이었네요.
    그대 놋그릇을 아는 것 보니 어지간히 품새를 갖춘 집안 출신이셨네요.

    집안에 큰일(설 추석 같은 명절이나 집안의 제사)이 있을 때나 내어놓는 놋그릇...
    우리는 녹도 슬지 않는다는 그 좋은 스뎅 그릇 아마도 70년도 후반이나 80년도 들어와서나 처음으로 장만했을지도 몰라요.

    제 기억엔 그 무게 1T도 더 나갈 거 같은 무거운 쇠그릇이 더 선명합니다.
    아무튼, 부질없는 제 블로그에 관심 둬 주시어 매우 매우 고맙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또다시 흐뭇하게 출발하게요~
  • 까진 산타클로스 2019/10/12 12:13 #

    ㅎㅎ 저는 94년에 태어났으니까요^^
    과히 섬세하고 아름다운 댓글이네요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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